전기차 스타트업 리비안(Rivian)과 독일 완성차 그룹 폭스바겐(Volkswagen)이 체결한 50억 달러(약 6조8천억 원) 규모의 소프트웨어 파트너십이 예상 밖의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번 협력을 통해 폭스바겐은 단순한 소프트웨어 공동 개발을 넘어, 리비안의 전기 SUV R2에 적용된 핵심 플랫폼을 자사의 차세대 전기차에 본격 도입하기로 했다.
리비안의 최고 소프트웨어 책임자 와심 벤사이드(Wassym Bensaid)는 최근 인터뷰에서 “R2 플랫폼이 폭스바겐의 미래 전기차 대부분에 적용될 것”이라고 밝히며, 이 플랫폼이 폭스바겐 브랜드뿐만 아니라 아우디, 포르쉐, 람보르기니 등 그룹 산하 전 브랜드에 확대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각 브랜드의 고유한 주행 감각과 사용자 경험(UI)은 유지하되, 차량의 기본 구조와 소프트웨어는 리비안의 ‘모듈형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통일된다는 것이다. 폭스바겐이 자사의 고질적인 소프트웨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리비안의 기술을 채택한 셈이다.
폭스바겐은 그동안 자체 소프트웨어 개발 부서 ‘카리아드(Cariad)’의 난항으로 여러 차종의 출시를 지연하거나 일부 모델을 시장에서 철수시킨 바 있다. 특히 유럽 시장에서는 사이버 보안 규제(UN R155)를 충족하지 못해 아우디 TT, 포르쉐 718, 폭스바겐 업(Up) 등 일부 모델이 큰 타격을 입었다.
이에 따라 이번 파트너십은 폭스바겐이 미래 모빌리티 경쟁력 강화를 위해 ‘외부의 신생 기업 기술’까지 수용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한때 오랜 전통과 보수적인 이미지로 알려졌던 폭스바겐이, 이제는 리비안의 젊고 유연한 소프트웨어 철학을 받아들이며 본격적인 체질 개선에 나선 셈이다.
첫 적용 모델은 내년 출시 예정인 ‘폭스바겐 Every1’(가칭)으로, 이후 출시되는 전기차 전 라인업에 점차 확대 적용될 예정이다. 이로써 소비자 입장에서는 리비안의 기술 신뢰성과 폭스바겐의 브랜드 파워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게 됐다.
소프트웨어가 전기차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른 지금, 이번 협력은 단순한 기술 공유를 넘어 전기차 산업 전반에 큰 전환점을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