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가 바뀔 조짐이다. 포르쉐가 투자한 미국 그룹14 테크놀로지스가 시오닉 에너지와 손잡고 100% 실리콘-탄소 음극재의 고온 안정성을 검증했다고 발표했다.
음극재는 배터리에서 리튬 이온을 저장하고 방출하는 역할을 한다. 배터리 부피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며, 에너지 용량과 충전 속도를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다. 지금까지는 안정성과 에너지 밀도가 검증된 흑연이 표준 소재였다.
문제는 흑연 공급망이다. 전 세계 흑연의 90% 이상이 중국에서 가공된다. 채굴 과정의 환경 부담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존하는 가운데, 서방 배터리 업체들은 실리콘과 합성 흑연 같은 대체재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양사는 4Ah, 10Ah, 20Ah 파우치셀에서 실리콘 음극재를 시험한 결과, 섭씨 45도와 60도 고온 환경에서 충방전 사이클과 보관 중 안정적인 성능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에너지 밀도는 킬로그램당 400와트시에 달해 현재 일반적인 200~300Wh/kg을 크게 웃돈다. 수명도 1200사이클 이상이다.
그룹14는 자사 실리콘 음극재가 배터리 용량에 따라 10분 이내 충전을 가능케 하고, 기존 대비 55%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존 생산 라인에 별도 설비 변경 없이 적용 가능한 점도 강조했다. 시오닉 에너지 역시 내년 전기차 시장에, 2027년에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 실리콘 음극재를 공급할 계획이다.
실리콘 음극재의 고질적 약점인 전해질 팽창, 셀 부풀음, 용량 저하 문제는 시오닉의 독자 바인더 기술과 설계로 해결했다고 양사는 설명했다.
이 기술은 이미 중국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적용돼 아이폰과 픽셀을 압도하는 배터리 용량을 구현하고 있다. 전기차 분야에서는 1.5초 만에 시속 100km에 도달하는 맥머트리 스페일링 하이퍼카의 100kWh 배터리팩에 그룹14 기술이 들어갔다.
메르세데스-벤츠는 2022년 전기 G클래스에 그룹14의 경쟁사 실라의 실리콘 음극재를 적용해 에너지 밀도를 40% 높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양산 모델 적용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제너럴모터스(GM)도 실리콘 음극재 개발에 나섰으며, 이 기술이 배터리 크기와 무게, 가격을 동시에 낮출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가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고 있지만, 현행 리튬이온 배터리도 실리콘 음극재 같은 소재 혁신으로 상당한 성능 개선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