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기차 업체 리비안이 자율주행용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자체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테슬라가 수년 전부터 구축해온 ‘설계부터 생산까지’ 수직계열화 전략을 본격 추격하겠다는 신호탄이다.
리비안은 1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에서 첫 ‘AI 앤드 오토노미 데이’를 개최하고 자율주행 핵심 기술을 대거 공개했다. 이날 행사의 핵심은 자체 설계한 추론용 반도체 ‘리비안 오토노미 프로세서(RAP1)’다.
RAP1은 초당 1,600조회(TOPS)의 연산 처리 능력을 갖췄다. 초당 50억 픽셀을 처리할 수 있어 카메라 기반 자율주행 시스템 구동에 최적화됐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리비안이 독자 개발한 저지연 연결 기술 ‘리브링크(RivLink)’를 적용해 복수의 칩을 연결하면 연산 능력을 배가할 수 있다.
이 칩은 3세대 자율주행 컴퓨터 ‘ACM3’에 탑재된다. 리비안은 RAP1 구동을 위한 AI 컴파일러와 플랫폼 소프트웨어까지 내재화했다고 밝혔다.
테슬라와 갈라지는 센서 전략
리비안은 이날 R2 크로스오버에 라이다(LiDAR)를 탑재하겠다고 공식 확인했다. 카메라와 레이더에 더해 라이다까지 결합한 ‘멀티모달’ 센싱 체계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라이다는 레이저를 쏘아 주변 환경의 3차원 공간 정보를 정밀하게 파악하는 센서다. 리비안은 “돌발 상황 감지 능력을 높이고 센서 간 이중화를 통해 안전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카메라 중심의 ‘비전 온리’ 전략을 고수하는 테슬라와 정반대 행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라이다를 “비싸고 불필요한 장치”라고 일축해왔다. 반면 웨이모, 크루즈 등 로보택시 업체와 대다수 완성차 업체는 라이다를 자율주행 필수 요소로 본다. 최근에는 중국 샤오펑(XPeng)이 라이다 제거 방침을 밝히며 테슬라 진영에 합류했지만, 리비안은 전통적 접근법을 택한 셈이다.
AI 자회사 설립…로보틱스 사업 확장 포석
리비안은 지난 11월 3분기 실적 발표 당시 AI 전문 자회사 ‘마인드 로보틱스(Mind Robotics)’ 설립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구체적인 사업 내용은 이날 행사에서도 베일에 싸여 있었지만, 자율주행 기술의 외연을 로보틱스 영역까지 넓히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이날 공개된 ‘리비안 통합 지능(RUI)’ 플랫폼은 복수의 거대언어모델(LLM)을 활용한 데이터 기반 체계다. 차량 진단부터 정비, 예측 유지보수까지 서비스 전반에 AI를 접목한다는 계획이다.
RJ 스카린지 리비안 창업자 겸 CEO는 “자체 개발한 1,600TOPS급 추론 칩이 탑재된 하드웨어 플랫폼으로 자율주행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레벨4 자율주행을 실현해 고객에게 차 안에서의 시간을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기술 내재화, 수익 다변화 무기 될까
업계는 리비안의 기술 내재화 전략에 주목하고 있다. 테슬라가 자체 반도체와 소프트웨어로 원가를 절감하고 기술 주도권을 확보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루시드 역시 자체 모터와 인버터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자체 기술 확보는 향후 수익 다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리비안은 이미 폭스바겐그룹과 전기차 플랫폼 기술 제휴를 맺었다. 스카웃모터스가 생산할 전기 픽업트럭에 리비안 기술이 적용될 예정이다.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플랫폼까지 외부에 공급하게 되면 새로운 수익원이 열리는 셈이다.
다만 이 모든 청사진은 실제 양산과 상용화를 거쳐야 검증된다. 내년 출시될 R2의 시장 반응이 리비안의 기술 전략 성패를 가늠할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