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세계 최대 가전·IT 박람회 CES에서 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핀란드 스타트업 도넛랩(Donut Lab)이 자사 전고체 배터리의 독립 검증 데이터를 공개하겠다고 선언했다. 출시 준비가 완료된 전고체 배터리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내놓은 지 수 주 만에, 업계 안팎의 거센 회의론에 정면으로 맞서기로 한 것이다.
마르코 레흐티마키 도넛랩 CEO는 지난 21일(현지시간) 유튜브 영상을 통해 “핀란드 국영 기술연구소 VTT가 자사 배터리를 독립적으로 시험했으며, 그 결과를 23일부터 영상 시리즈 형태로 순차 공개한다”고 밝혔다. 회의론자들을 겨냥해 별도로 개설한 웹사이트 ‘idonutbelieve.com’에서도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레흐티마키는 “측정 가능한 근거를 공개해 주장과 검증된 사실을 사람들이 직접 구분할 수 있게 하겠다”며 “우리가 시장에 가져오는 것은 가히 충격적인 수준의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도넛랩이 CES에서 공개한 사양은 업계 상식을 뒤흔드는 수준이었다. 에너지 밀도 400Wh/kg은 현재 리튬이온 배터리(200~300Wh/kg)를 훌쩍 뛰어넘고, 10분 이내 완충에 10만 사이클의 수명은 리튬이온 배터리 수명(약 1,500~3,000사이클)과 비교 자체가 무색한 수준이다. 영하 30도에서 영상 100도까지 작동하며, 독성 물질이나 희토류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도 함께 내세웠다.
전고체 배터리는 오랫동안 배터리 업계의 ‘성배(Holy Grail)’로 불려왔다.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주행 가능 거리가 길고, 충전 속도가 빠르며, 극한의 날씨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데다 화재 위험을 일으키는 열폭주(thermal runaway)에도 강하다. 그러나 삼성SDI·파나소닉·도요타 등 세계 최대 배터리 기업들조차 아직 양산에 성공하지 못했고, 업계 대다수는 상용화까지 수년이 더 걸릴 것으로 본다. 바로 이 때문에 도넛랩의 발표가 폭발적인 주목과 동시에 강한 불신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CES 발표 당시 특허 공개나 학술 연구, 실물 시연은 전혀 없었다는 점도 비판의 빌미가 됐다.
레흐티마키는 이번 영상에서 회의론이 단순한 불신을 넘어 실질적인 타격을 입히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의심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기술을 확장하는 데 필요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전고체 배터리가 사기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대형 배터리 제조사들을 직접 겨냥해 “수년, 심지어 수십 년의 연구로도 승자가 나오지 않았다면 누군가는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부정이 때로는 가장 손쉬운 탈출구”라고 반박했다. “아웃사이더 집단이 판을 바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고도 덧붙였다.
파트너사인 버지 모터사이클스(Verge Motorcycles)는 도넛랩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오토바이의 생산과 납품이 올해 1분기 일정대로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초기 생산 물량이 극히 제한적인 만큼 신규 주문 고객의 인도는 올해 말에서 내년으로 밀릴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레흐티마키는 영상 말미에 “사기가 아니다. 그리고 이 기술은 반드시 산업을 바꿀 것”이라고 못 박았다. 23일부터 공개될 VTT의 독립 검증 결과가 수십 년 묵은 ‘전고체 배터리의 꿈’에 실체를 부여할지,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