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조 손실 스텔란티스, 중국산 전기차로 유럽 반격 나선다

스텔란티스가 지난해 200억 달러(약 29조 2,000억 원)가 넘는 순손실을 기록하며 혹독한 한 해를 보낸 가운데, 중국 전기차 브랜드 리프모터(Leapmotor)를 활용한 유럽 시장 반격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스텔란티스 CEO 안토니오 필로사는 지난달 실적 발표 자리에서 스페인 사라고사 인근 피게루엘라스(Figueruelas) 공장에서 리프모터 전기차를 생산한다는 계획을 공식 확인했다.

첫 번째 현지 생산 모델은 컴팩트 전기 SUV인 리프모터 B10으로, 올해 하반기 라인 가동이 목표다. 초기 연간 생산 목표는 4만 대 수준이며, 2027년까지 B05, A10, A05 등 3개 모델을 추가 투입해 총 4개 차종을 스페인에서 생산하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피게루엘라스 공장은 현재 푸조 208, 오펠 코르사, 란치아 입실론을 생산 중인 소형차 거점으로, 여기에 리프모터 라인업을 더하는 구조다.

현지 생산을 뒷받침하기 위한 부품 공급망도 갖춰지고 있다. 중국 둬리 테크놀로지(Duoli Technology)와 바스크 지역 부품 업체 파고르 에데를란(Fagor Ederlan)이 합작 설립한 리더 오토모티브(Lieder Automotive)가 B10용 섀시 부품을 보르하(Borja) 공장에서 제작해 공급하는 방식이다. 오는 7월부터 부품 생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스텔란티스가 현지 생산에 공을 들이는 배경에는 관세 장벽이 있다. EU는 중국산 전기차에 기본 관세 10%에 더해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리프모터는 현재 20.7%의 추가 관세를 맞고 있다. 스페인 생산이 본격화되면 이 부담을 털어낼 수 있다. 앞서 스텔란티스는 폴란드 티히(Tychy) 공장에서 소형 전기차 T03를 조립 생산하는 방식으로 관세를 우회하려 했지만, 프랑스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적격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결국 지난해 봄 생산을 중단한 바 있다.

B10은 현재 중국에서 수입해 유럽에 판매 중이며, 독일 기준 시작 가격은 2만9,990유로(약 3만4,800달러, 한화 약 5,080만 원)다. 차체 길이 4.52m에 후륜 구동 218마력 단일 모터를 얹었고, 56.2kWh와 67.1kWh 두 가지 배터리를 선택할 수 있다. WLTP 기준 주행거리는 각각 361km와 434km다. 3만 유로 미만이라는 가격은 폭스바겐 ID.4, 스코다 엘록, 기아 EV3 등 주요 경쟁 모델과 정면으로 맞붙는 수준이며, 현지 생산으로 가격이 더 내려갈 경우 유럽 시장에서 상당한 파급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스텔란티스는 2023년 리프모터 지분 20%를 약 16억 유로(약 18억 달러, 한화 약 2조 6,260억 원)에 인수하고, 지분율 51%로 스텔란티스가 주도하는 합작법인 ‘리프모터 인터내셔널’을 설립했다. 리프모터 인터내셔널은 2025년 4분기에만 유럽에서 1만7,000대 이상을 팔아치우며 전년 동기 대비 13배에 달하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유럽 판매 비중이 전체의 70%를 웃도는 만큼, 사실상 유럽이 이 합작 사업의 핵심 무대다.

스텔란티스는 북미에서 지프 랭글러 4xe를 비롯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 모델을 단종하고 전기 픽업트럭 램 1500 풀 BEV 계획도 접었다. 대신 주행거리 연장형(EREV) 방식의 램 1500 REV, 지프 그랜드 왜고니어 EREV, 순수 전기 오프로더 지프 리콘 EV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한 상태다. 북미에서는 EREV로 속도를 조절하고, 유럽에서는 중국 파트너를 앞세워 볼륨을 확보하는 이중 전략이다.

필로사 CEO는 “리프모터에 대한 투자는 매우 성공적인 결정이었다”고 자평하며 유럽 전기차 시장 공략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다만 스텔란티스가 리프모터 인터내셔널을 통해 리프모터의 핵심 기술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며, 양측이 기술 협력 심화를 논의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공식 확인된 내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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