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체 배터리를 개발 중이라고 주장하는 핀란드 스타트업 도넛랩(Donut Lab)이 세 번째 독립 시험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검증의 핵심 질문은 하나다. “도넛랩의 배터리는 사실 슈퍼캐패시터가 아닌가?”
도넛랩은 지난 1월 미국 소비자가전쇼(CES)에서 에너지 밀도 400Wh/kg, 충전 시간 약 5분, 수명 10만 사이클을 주장하는 배터리를 공개해 업계를 뒤흔들었다. 토요타, 팩토리얼, CATL도 아직 양산에 이르지 못한 전고체 배터리를 무명의 핀란드 스타트업이 먼저 완성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공개 직후부터 의혹이 불거졌다. 도넛랩과 연계된 재생에너지 기업 노르딕 나노(Nordic Nano)가 태양광·에너지 저장 분야용 슈퍼캐패시터를 개발했으며, 해당 제품의 에너지 밀도가 도넛랩 배터리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이 온라인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노르딕 나노는 이후 관련 자료를 웹사이트에서 삭제했다.
배터리와 슈퍼캐패시터는 에너지를 저장한다는 공통점 외에는 작동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배터리는 셀 내부의 화학 반응으로 에너지를 저장하며 충전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반면, 슈퍼캐패시터는 전기장에 에너지를 저장해 순간적인 충방전은 빠르지만 방치하면 전하가 빠르게 빠져나간다.
도넛랩은 이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핀란드 국립 기술연구소 VTT에 자가 방전 성능 시험을 의뢰했다. 연구진은 셀을 50% 충전 상태로 맞춘 뒤 240시간 동안 방치하고 잔존 에너지를 측정했다. 결과는 충전량의 약 98%가 유지됐다. 슈퍼캐패시터라면 이 정도 기간에 전하가 대부분 소실돼야 한다. 도넛랩은 이 결과를 근거로 자사 제품이 배터리임을 공식 확인했다고 주장한다.
MIT 재료화학 명예교수인 도널드 새도웨이는 이번 시험 결과에 대해 “슈퍼캐패시터는 짧은 시간 동안 큰 출력을 낼 수 있지만 지속 시간이 짧다”며 도넛 배터리가 슈퍼캐패시터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멈췄다. “보고서가 너무 개괄적이어서 도넛랩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깊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도넛랩이 매주 공개해온 세 차례의 시험—10분 내 완충, 섭씨 100도 내열성, 이번 자가 방전—은 어느 것도 해당 제품이 실제로 전고체 방식임을 입증하지 못했다. 배터리 전문가들은 소수 사이클의 소형 셀 실험실 결과만으로는 의미 있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진정한 검증은 팩 단위에서 수천 사이클에 걸쳐 동일한 성능을 재현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새도웨이 교수의 말로 요약된다. “비범한 주장에는 비범한 증거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