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이래 첫 적자 위기 혼다, 결국 전기차 포기… 하이브리드로 돌파구 노린다

혼다가 야심차게 추진해온 전기차 3개 모델의 개발과 출시를 전면 백지화했다. 창사 이후 단 한 번도 연간 적자를 낸 적 없던 혼다가 상장 이래 처음으로 순손실을 기록할 위기에 처하면서, 전동화 전략 전반의 대대적인 수정에 나선 것이다.

혼다는 지난 12일 온라인 기자회견을 열고 전기차 전용 라인업 ‘제로(0) 시리즈’의 SUV와 세단(살룬), 그리고 프리미엄 브랜드 아큐라의 전기 스포츠 SUV ‘RSX’ 개발을 즉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세 모델 모두 미국 현지 생산을 목표로 추진되던 핵심 전동화 프로젝트였다. 제로 시리즈 SUV와 세단은 2025년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에서 프로토타입이 처음 공개돼 큰 주목을 받았으며, 아큐라 RSX는 올해 하반기 미국 오하이오 전기차 허브에서 생산 개시가 예정돼 있었다.

미베 도시히로 혼다 사장은 “미래에 부담을 남기지 않기 위해 창자가 끊어질 듯한 심정으로 내린 결단”이라며 “사업 성립이 어려운 상황에서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것은 회사의 미래를 위해 최선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2040년까지 전 차종을 전기차·수소차로 전환하겠다는 기존 목표의 재검토에도 착수했음을 시사했다.

이번 결정의 배경에는 세 가지 악재가 동시에 겹쳤다. 첫째는 트럼프 행정부의 반전기차 정책이다. 지난해 9월 미국 전기차 세액공제(7,500달러)가 폐지됐고, 내연기관 배기가스 규제가 완화되면서 미국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급속히 꺾였다. 둘째는 중국발 압박이다. 혼다는 자사 공식 자료에서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 기술과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에 강점을 가진 중국 신생 전기차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가성비 면에서 우위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중국 소비자의 구매 기준이 연비·실내 공간 같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흐름을 미처 읽지 못했다는 자성이다. 셋째는 관세 부담이다. 미국의 수입 관세 정책 변화가 내연기관·하이브리드 모델의 수익성까지 갉아먹으며 사업 구조 전반을 흔들었다.

재무 충격은 숫자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개발 중이던 전기차 프로젝트를 중단하면서 유형·무형 자산 손실만 8,200억~1조 1,200억 엔(약 7조~10조 5,000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 향후 전략 재편 비용을 포함하면 총 손실 규모는 최대 2조 5,000억 엔, 우리 돈으로 약 23조 4,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혼다는 2026년 3월 결산 기준 최대 6,900억 엔의 순손실을 기록할 전망이며, 이는 전기 8,358억 엔 흑자에서 완전히 뒤집힌 수치다. 경영 책임을 지고 미베 사장을 포함한 주요 임원들은 3개월간 월 급여의 20~30%를 자진 반납하고 성과급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혼다가 선택한 돌파구는 하이브리드다. 전기차에 투입하던 개발 자원을 하이브리드 라인업 확대로 빠르게 전환하고, 2020년대 후반까지 북미 시장에 새 하이브리드 모델을 추가 투입할 계획이다. 장기 성장이 기대되는 인도 시장도 중점 공략 대상으로 지목했다.

토요타와 닛산 등 다른 일본 자동차 회사들도 비슷한 압박 속에 전동화 속도를 조절하는 추세로, 혼다의 이번 결정이 일본 완성차 업계 전반의 전략 재편을 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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