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 2030년 이후로 미룬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차세대 배터리 기술로 주목받는 전고체 배터리의 상용화 시점을 2030년 이후로 미루기로 결정했다. 반면 메르세데스-벤츠, 도요타, 스텔란티스, BYD 등 글로벌 경쟁업체들은 빠르면 2026년부터 순차적으로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선보일 계획이어서 대조를 이룬다.

스펜서 조 현대차 글로벌 생산기획 책임자는 지난 24일 스페인 타라고나에서 열린 ‘기아 EV 데이 2025’에서 “2030년 이전에는 전고체 배터리를 상용화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우리 엔지니어들이 신뢰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판단하면 그때 양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고체 배터리는 현재 주로 사용되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액체 전해질을 고체로 대체해 에너지 밀도를 높이고 화재 위험을 낮춘 차세대 기술이다. 주행거리를 최대 80%까지 늘릴 수 있어 전기차의 ‘성배(聖杯)’로 불린다.

현대차그룹은 당분간 기존 리튬인산철(LFP)과 리튬니켈망간코발트(NMC) 배터리 기술을 개선하는 데 집중할 방침이다. 반면 경쟁사들은 이미 상용화를 위한 막바지 작업에 돌입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이달 초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세계 최초’ 양산형 전기차 시험 주행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팩토리얼 에너지와 협력해 개발한 이 기술은 한 번 충전으로 1,000km 이상을 주행할 수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스텔란티스 역시 팩토리얼과 손잡고 2026년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 닷지 차저를 출시할 계획이다.

일본 자동차 제조사들도 앞다퉈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뛰어들었다. 혼다는 지난해 11월 전고체 배터리 시범 생산라인을 공개했으며, 토요타는 일본 석유회사 이데미쓰와 협력해 2027~2028년 상용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 배터리 기업들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BYD 배터리 사업부 CTO 쑨화쥔은 2027년 첫 전고체 배터리 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이라고 최근 밝혔다.

국내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 시점을 늦춘 것은 완성도와 안정성을 우선시한 결정으로 보인다”며 “3월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을 공개할 예정이어서 구체적인 개발 현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그룹의 신중한 접근이 오히려 장기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자동차연구소 김민수 소장은 “전고체 배터리는 높은 에너지 밀도와 빠른 충전 속도, 안전성 등 장점이 많지만, 양산 과정에서 기술적 난관이 많다”며 “초기 진입보다 완성도 높은 기술력으로 시장에 진입하는 전략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현대차그룹이 배터리 기술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 관계자는 “전고체 배터리는 전기차 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며 “기술 개발 지연은 향후 시장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Leave a Reply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