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EV4, 1만km의 뉘르 지옥을 견딘 이유 있는 자신감

현대차그룹은 1990년대부터 이어진 “신뢰성 논란”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기 위해 오랜 시간 고군분투해왔다. 그 중심에는 혹독한 품질 테스트,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집요한 내구 실험이 있었다. 2026년형 기아 EV4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번엔 아주 극단적인 방법으로 그 내구성을 증명해냈다.

기아는 EV4의 배터리 성능과 전체 구조의 강인함을 시험하기 위해 무려 11만 9천 km에 달하는 가혹 내구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그중 하이라이트는 단연 1만 km가 넘는 뉘르부르크링 주행 실험이었다. 말 그대로 ‘녹색 지옥(Green Hell)’이라 불리는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 서킷을 6,200마일(약 1만 km)이나 달리며 배터리의 한계를 시험했다.

이건 단순히 “가성비 전기차의 서킷 주행 실험”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비틀리고, 무모하며, 솔직히 말해 정신 나간 테스트다. EV4는 이 뉘르부르크링 주행 동안 전체 출력의 90~95% 구간을 유지하며 달렸다. 6,200마일 동안 거의 풀악셀 상태였다는 얘기다. 파워트레인은 물론이고, 서스펜션, 냉각계, 충전 시스템까지 모든 부품이 극한의 스트레스를 견뎌야 했다.

물론 충전도 예사롭지 않았다. 주행과 주행 사이마다 기아가 뉘르부르크링 인근에 설치한 150kW급 급속 충전소에서 ‘하이퍼차징’을 반복했다. 즉, 배터리는 빠르게 방전되고, 또 빠르게 충전되는 고강도 사이클을 쉼 없이 반복한 셈이다.

놀라운 건 이 모든 실험을 마친 뒤에도 EV4의 배터리 상태가 95% 수준으로 유지됐다는 점이다. 기아 측은 이 수치조차 “보수적인 수치”라고 밝혔다. 6,200마일에 이르는 고출력 주행은 일반적인 고객 주행 조건으로 환산하면 무려 15만 km 이상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물론, 배터리 수명에는 단순한 사이클만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시간에 의한 자연 열화도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EV4에 쓰인 인산철(LFP) 배터리의 경우, 고온 환경과 장기간 사용에 민감한 특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 실험이 차량 수명의 전부를 대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차량과 배터리의 구조적 내구성 자체는 분명 높은 신뢰를 줄 수 있는 수준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이런 테스트 결과는 EV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기차는 소모품”이라는 인식은 이제 옛말이 되고 있다. 오히려 구조가 단순하고 정비 요소가 적은 EV가 장기 소유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기아는 EV4에 대해 “100,000마일 또는 8년 후에도 배터리 용량의 최소 70%를 보장”한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EV4는 미국 시장에서 세금 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일부 지역에선 관세로 인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유럽 기준 최대 630km(WLTP 기준)의 주행거리, 그리고 미국 기준 약 39,000달러의 예상 가격표를 고려하면 이 차는 여전히 경쟁력 있는 상품이다.

여기에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버텨내는 배터리 내구성까지 더해진다면? 고민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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