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가 새롭게 선보일 카이엔 전기차는 단순한 모델 변경이 아니라 배터리 기술에서 큰 전환점을 마련했다. 포르쉐 에너지 시스템 책임자인 마르코 슈메르벡은 “타이칸과 마칸에서 이어온 진화 수준을 넘어서는 변화”라고 설명했다.
이번 카이엔은 기존의 프레임 구조를 없애고, 배터리 모듈을 차체에 직접 장착하는 방식을 처음 도입했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부품을 줄여 무게를 낮췄고, 같은 공간에서 더 많은 셀을 담을 수 있게 됐다. 또 모듈 단위로 분리해 교체할 수 있어 수리도 한결 용이하다.
배터리 용량은 총 113kWh, 실사용 기준으로는 108kWh다. 이는 타이칸보다 부피는 103리터 줄었지만, 사용 가능한 에너지는 오히려 더 많다. 셀은 LG화학에서 공급하며, 실리콘-흑연 음극과 니켈·망간·코발트·알루미늄 양극 조합을 사용한다. 실리콘이 충전 속도를 높여, 최대 400kW 출력에서 10분 충전으로 WLTP 기준 약 300km에 해당하는 주행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
셀 구성도 단순화됐다. 타이칸은 32개 모듈에 384개 셀을 썼지만, 카이엔은 6개 모듈에 192개 셀만 사용한다. 각 모듈은 상하단 냉각판으로 직접 열을 제어하며, 냉각수의 온도 변화를 고려해 유로 설계가 세밀하게 달라진다.
효율을 높이기 위한 작은 개선도 눈에 띈다. 라디에이터 팬의 위치를 조정해 효율을 15% 끌어올렸고, 고전압 충전 케이블은 전통적인 구리선 대신 열 손실을 줄인 금속 소재를 활용했다.
고성능 모델인 ‘터보’ 버전에는 오일 냉각식 후륜 모터가 탑재돼 지속 출력이 크게 향상됐고, 제동 에너지 회수 성능은 최대 600kW에 달한다. 이는 타이칸의 400kW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포르쉐는 카이엔 전기차의 예상 주행거리를 WLTP 기준 600km(373마일)로 제시했다. 다소 낙관적인 수치이지만, 지금까지 포르쉐 전기차들이 실제 주행거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온 만큼 기대를 모은다.
타이칸이 출시된 지 불과 6년 만에 이룬 진전이다. 이번 카이엔 전기차는 포르쉐가 쌓아온 기술을 집약한 모델로, 브랜드 전동화 전략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