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동차 산업의 상징과도 같은 포드가 전기차 전환 국면에서 중대한 기로에 섰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과 테슬라의 공세 속에서 “이 싸움에서 지면 포드의 미래는 없다”고까지 말해온 짐 팔리 최고경영자(CEO)의 경고와 달리, 최근 포드의 행보는 후퇴에 가깝다는 평가도 나온다.
포드는 최근 전기 F-150 라이트닝의 생산을 중단하고, 차세대 순수 전기 버전 개발 계획을 철회했다. 대신 내연기관을 병행한 주행거리 연장형(EREV) 모델로 방향을 틀었고, 전기 상용 밴 계획 역시 접었다. 테네시주에 건설 중이던 ‘전기차 전용 공장’의 명칭마저 ‘트럭 공장’으로 변경했다. 전기차 수요와 수익성이 당초 예상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공식적인 이유다.
그럼에도 포드는 “전기차의 미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한다. 그 중심에는 실리콘밸리식으로 운영되는 비밀 조직, 이른바 ‘스컹크웍스(skunkworks)’가 있다. 이 조직이 개발 중인 3만 달러(약 4천만 원)급 전기 픽업트럭이 포드 전기차 전략의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카드로 떠올랐다.
디트로이트를 벗어난 또 하나의 포드
포드의 스컹크웍스는 전통적인 디트로이트식 조직 문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캘리포니아에 별도로 꾸려졌다. 관료적 의사결정과 느린 개발 속도를 끊어내고, 중국 업체들처럼 빠르고 저렴하게 전기차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 조직을 이끄는 인물은 더그 필드. 그는 1980~90년대 포드에서 엔지니어로 일한 뒤, 애플과 테슬라를 오가며 소프트웨어와 전기차 개발을 모두 경험한 인물이다. 필드는 포드 내부에서도 ‘기존 방식과 결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포드는 이 조직에 전례 없는 자율성을 부여했다. 내부 직원조차 출입이 제한될 정도로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기존 부서의 간섭을 차단했다. 이는 포드 스스로 기존 시스템이 전기차 시대에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핵심은 ‘플랫폼’과 ‘제조 방식’
포드가 과거 전기차에서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내연기관 플랫폼을 개조한 ‘과도기적 전기차’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전기차만을 위한 ‘유니버설 EV 플랫폼’을 개발해 여러 차종에 공통 적용한다는 전략이다.
개발 기간도 대폭 단축한다. 기존에는 한 모델을 양산하기까지 최대 7년이 걸렸지만, 이를 3~4년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중국 업체들이 보여주는 개발 속도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제조 방식 역시 달라진다. 포드는 켄터키주 루이빌 공장에 20억 달러를 투자해 생산 시스템을 전면 개편한다. 테슬라의 ‘언박스드(Unboxed)’ 방식처럼 대형 모듈을 병렬로 조립하는 구조를 도입해 비용과 시간을 동시에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흔들리는 미국 시장, 더 어려워진 계산서
문제는 외부 환경이다. 미국 내 전기차 전환 속도는 눈에 띄게 둔화됐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연비 규제는 완화됐고, 전기차 보조금은 축소됐다. 배터리 가격 하락도 기대만큼 빠르지 않다.
포드 경영진 역시 “2030년 전기차 비중이 45%에 이를 것이라는 기존 전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인정했다. 정책, 수요, 비용 구조가 동시에 변하면서 포드의 기존 전기차 전략은 근본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이에 포드는 순수 전기차 대신 주행거리 연장형 모델로 단기 수익성을 보완하고 있다. 차세대 F-150 라이트닝 EREV는 총 주행거리 700마일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견인 성능 역시 기존 전기 모델보다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2027년, 마지막 시험대
하지만 진짜 승부는 아직 오지 않았다. 스컹크웍스가 개발 중인 저가형 전기 픽업은 2027년 출시가 목표다. 문제는 그때까지 시장이 얼마나 더 변해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중국 업체들은 이미 가격과 기술 양면에서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있고, 테슬라는 제조 혁신을 앞세워 또 다른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포드가 또다시 ‘늦은 추격자’로 남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에서는 이번 스컹크웍스 프로젝트를 두고 “포드가 스스로에게 던진 마지막 기회”라는 평가가 나온다. 약속을 지키면 재도약의 발판이 되겠지만, 실패한다면 포드는 전기차 시대의 주도권 경쟁에서 사실상 밀려날 수 있다.
한때 자동차 대량생산 방식을 발명하며 산업의 역사를 바꿨던 포드. 그 포드가 다시 한 번 판을 뒤집을 수 있을지, 아니면 또 한 번의 약속으로 끝날지는 이제 3만 달러짜리 전기 픽업트럭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