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Renault)가 전기 SUV 세닉 E-Tech 일렉트릭의 상품성을 대폭 강화한다. 배터리 용량을 늘려 1회 충전 주행거리를 최대 642km까지 확보하고, 급속충전 시간은 기존보다 9분 단축한다. 가격 경쟁력을 높인 67kWh LFP 배터리 모델도 추가한다.
르노는 최근 2027년형 세닉 E-Tech 일렉트릭을 공개했다. 2024년 출시 이후 가장 큰 폭의 변화다. 지난해 원페달 드라이빙과 양방향 충전 기능 등을 추가한 데 이어 이번에는 배터리와 충전 성능, 디자인, 운전자 보조 시스템까지 손봤다.
특히 주력 롱레인지 모델은 기존 87kWh 배터리를 89kWh로 교체한다. 단순히 용량만 늘린 것이 아니라 충전 성능까지 개선한 것이 핵심이다.
625→642km…충전은 37분에서 28분으로

세닉 E-Tech 일렉트릭 220 롱레인지는 최고출력 160kW(약 218마력) 전기모터를 그대로 사용한다. 대신 기존 87kWh NCM 배터리를 새로운 89kWh NCM 배터리로 바꾼다.
이에 따라 WLTP 기준 1회 충전 주행거리는 기존 최대 625km에서 642km로 17km 늘어난다.
숫자상 주행거리 변화보다 눈에 띄는 부분은 충전 속도다. 최대 급속충전 출력은 기존과 같은 150kW지만 배터리 충전 곡선을 개선하면서 15→80% 충전 시간이 37분에서 28분으로 줄었다.
최고 충전 출력만 높이는 대신 높은 출력을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하느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장거리 주행에서 실제 충전소에 머무르는 시간을 약 24% 줄이는 효과가 있다.
최고출력 125kW(약 170마력)의 컴포트 레인지 모델은 기존 60kWh 배터리를 유지한다.
67kWh LFP도 추가…467km 달리고 충전은 24분

더 큰 변화는 LFP 배터리 도입이다.
르노는 향후 67kWh LFP 배터리를 세닉 E-Tech 일렉트릭에 추가한다. 주행거리는 WLTP 기준 최대 467km다. 89kWh NCM 모델보다 짧지만 급속충전 최고출력은 오히려 165kW로 높다.
15→80% 충전에는 24분이 걸린다. 최근 부분변경을 거친 메간 E-Tech 일렉트릭에 적용한 것과 같은 배터리다.
르노는 LFP를 NCM보다 가격 경쟁력이 높고 내구성이 뛰어난 대안으로 보고 있다. 상대적으로 낮은 에너지 밀도라는 약점은 셀투팩(Cell-to-Pack·CTP) 기술로 보완했다.
새로운 LFP 배터리에는 232개의 파우치형 셀을 촘촘하게 배치한다. 기존처럼 셀을 여러 개 묶어 모듈을 만든 뒤 팩에 넣는 단계를 줄이고 셀을 팩에 직접 통합하는 방식이다.
르노가 밝힌 패킹 효율은 53%다. 같은 공간에 더 많은 셀을 넣을 수 있어 LFP 배터리의 낮은 에너지 밀도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
최근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LFP 적용을 확대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LFP를 보급형에 적용하고, 장거리 모델에는 에너지 밀도가 높은 NCM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배터리를 이원화하는 전략이다.
4.47m 차체에 1900kg 미만…플랫폼은 그대로

기본 설계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
세닉 E-Tech 일렉트릭은 르노그룹의 전기차 전용 RG Medium 1.0 플랫폼을 사용한다. 기존 AmpR Medium의 새로운 명칭이다.
전장 4.47m의 중형 전기 SUV로 배터리를 차체 바닥에 배치해 무게중심을 낮췄다. 차량 무게도 사양에 따라 다르지만 1900kg을 넘지 않도록 설계했다.
르노는 이를 통해 도심에서 다루기 쉬운 크기를 유지하면서 가족용 SUV에 필요한 공간과 장거리 주행 능력을 동시에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충전 기능도 다양하다. 지난해 상품성 개선을 통해 11kW 양방향 AC 충전기를 적용했고 일부 사양에서는 22kW 충전기도 선택할 수 있다.
스티어링 휠 패들로 회생제동 강도를 조절할 수 있으며 원페달 드라이빙도 지원한다.
겉모습도 손봤다…새 휠·외장 색상 추가
이번 변경에서는 디자인도 다듬었다.
외장 색상은 7가지로 확대하고 새틴 블루 슬레이트와 엑소 갤럭시 그레이를 새롭게 추가했다. 앞뒤 범퍼 하단에는 유광 블랙 장식을 넣고 19인치와 20인치 휠도 새로운 디자인으로 바꿨다.
실내는 트림에 따라 차별화를 강화했다.
중간급 테크노에는 재활용 소재 비중을 높인 새로운 PET 직물 시트를 적용한다. 대시보드는 카본 블랙을 기본으로 구조감이 드러나는 패브릭 소재를 사용한다.
에스프리 알핀은 빛에 따라 검은색에서 다른 색조로 변화하는 ‘스펙트럴 티타늄’ 효과를 적용한다. 최상위 아이코닉에는 새로운 장식 패널 등이 들어간다.
적재공간 활용성을 높이는 듀얼 트렁크 플로어를 비롯해 수납 관련 액세서리도 확대했다.
끼어드는 차 여러 대 동시에 본다
운전자 보조 시스템도 개선했다.
기본 적용하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일부 트림의 액티브 드라이버 어시스트가 주변 차량과 교통 상황을 더욱 세밀하게 분석하도록 소프트웨어를 개선했다.
새롭게 추가한 ‘멀티 타깃’ 기능은 여러 대의 차량을 동시에 추적한다. 옆 차로에서 끼어들거나 갑자기 감속하는 차량을 보다 빠르게 파악하기 위한 기능이다.
긴급제동 보조 시스템도 개선해 필요한 경우 차량을 완전히 정지시킬 수 있도록 했다. 모든 트림에는 운전자 모니터링 시스템을 기본 적용한다.
주행 상황에 따라 에코·컴포트·스포츠 모드를 자동으로 전환하는 기능도 새롭게 들어간다.
구글 제미나이까지 차 안으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기존 오픈R 링크를 유지하면서 기능을 확대한다.
구글 지도는 전기차 경로 계획 기능을 개선하고 운전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경로를 설정할 수 있는 옵션을 늘렸다. 특히 기존 구글 어시스턴트에 더해 생성형 AI 기반 ‘제미나이’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운전자가 자연어로 차량 기능이나 목적지 등에 관해 질문하고 답을 받을 수 있도록 음성 인터페이스를 강화하는 방향이다.
스마트폰 무선충전기도 바뀐다. 자석으로 스마트폰을 고정하면서 냉각까지 지원하고 Qi2 규격에 대응한다. 아이폰의 맥세이프도 지원한다.
프랑스에서는 89kWh 모델 6100만원대부터
세닉 E-Tech 일렉트릭은 프랑스 두에 공장에서 생산한다.
가격 변화도 관심을 끈다. 기존 독일 가격은 60kWh 모델이 4만3000유로, 87kWh 모델은 4만8000유로부터 시작했다.
반면 새 모델은 프랑스에서 160kW 모터와 89kWh NCM 배터리를 갖춘 사양이 3만8750유로부터 시작한다. 7일 원·유로 환율 기준으로 단순 환산하면 약 6100만원 수준이다.
향후 출시할 67kWh LFP 모델은 3만1750유로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같은 방식으로 환산하면 약 5000만원이다. 국가별 보조금이나 세금 체계가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LFP 배터리 도입을 통해 가격 진입 장벽을 낮추려는 전략은 분명하다.
프랑스에서는 올가을부터 신형 세닉 E-Tech 일렉트릭의 주문을 받는다.
이번 변화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단순한 배터리 용량 확대보다 선택지를 넓힌 방식이다. 장거리 운전자에게는 642km를 달리는 89kWh NCM을, 가격을 중시하는 소비자에게는 67kWh LFP를 제시한다.
특히 89kWh 모델은 최대 충전출력을 높이지 않고도 15→80% 충전 시간을 37분에서 28분으로 단축했다. 전기차의 충전 성능을 최고출력 숫자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