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무선충전 기업 일렉트레온이 독일 하노버에서 열리고 있는 ‘IAA 트랜스포테이션 2026’에서 승용차와 소형 상용차를 위한 무선충전 시스템 ‘라이트 도트(Lite DOT)’를 선보였다. 그동안 고속도로나 버스 노선 같은 대규모 인프라에 집중해온 일렉트레온이 개인 주차공간과 소형 차고지를 정조준한 제품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라이트 도트는 지면에 얹는 충전 패드와 벽면에 다는 제어장치로 구성되며, 최대 11kW 출력을 낸다. 이는 가정용 완속 충전기와 비슷한 수준이다. 케이블도, 플러그도, 땅을 파는 공사도 필요 없다. 차량이 패드 위에 주차하고 시스템이 차량을 인식하면 충전이 자동으로 시작된다. 회사 측은 기존 주차 시설에 별도 토목공사 없이 설치할 수 있는 모듈형 무선충전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의 첫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다만 가격과 출시 시점, 출시 지역, 협력할 완성차 업체는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

작동 방식은 일렉트레온이 기존 상용 제품에 써온 자기유도 방식 그대로다. 충전 패드가 주차공간 바닥에 깔리고, 차량 하부에는 완성차 업체나 일렉트레온이 공급하는 수신 코일이 장착돼 회로를 완성한다. 충전 세션은 전용 앱 ‘일렉트레온 플로우’로 관리하며, 영하 30도부터 영상 50도까지, 비나 눈이 오는 환경에서도 작동한다고 회사는 설명했다. 오렌 에저 일렉트레온 회장 겸 최고경영자는 “전기 모빌리티의 미래는 무선이며, 머지않아 모든 주차공간에서 이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렉트레온은 이 제품을 우선 차량 운영 업체를 겨냥한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기존 유선 충전 인프라에서 케이블은 유지보수 부담이 가장 큰 부품 중 하나로 꼽힌다. 잦은 플러그 탈착, 날씨와 먼지 노출, 차량이 커넥터를 밟고 지나가면서 생기는 파손이 대표적이다. 안드레아스 벤트 일렉트레온 독일 법인장은 “차량 운영 업체는 사업장과 주차 시설에 쉽게 설치하고 일상 운영에 매끄럽게 녹여낼 수 있는 유연하고 확장 가능한 충전 방식을 원한다”고 전했다. 무인으로 운행하는 자율주행차 입장에서는 무선충전이 편의가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운전자가 없는 차량은 스스로 플러그를 꽂을 수 없어, 무선 패드나 로봇형 충전 커넥터 정도가 대규모 자율주행 차고지에서 쓸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효율 문제는 아직 숙제로 남아 있다. 무선 전력 전송은 유선보다 에너지 손실이 클 수밖에 없는데, 일렉트레온은 라이트 도트의 효율 수치를 따로 공개하지 않았다. 참고할 만한 사례는 이스라엘 로쉬 하아인에 있는 자사 버스 차고지다. 세계 최초 24시간 무선충전 차고지라고 회사가 소개하는 이곳은 효율 89.3%, 가동률 99%를 기록하며 버스 23대가 하루 평균 약 60km씩 주행거리를 늘리고 있다. 산업용 전기요금으로 밤새 충전하는 차고지 입장에서는 전력 10% 안팎을 손실로 감수할 만하지만, 소매 요금을 내는 개인 차량 소유자에게는 매번 충전할 때마다 붙는 웃돈이나 다름없다.
무선충전 시장은 이미 여러 업체가 경쟁하는 구도로 넘어갔다. 포르쉐는 올해 초 전기 카이엔에 11kW 무선충전 바닥판을 옵션으로 얹어 양산을 시작했는데, 완성차 업체가 공장에서 직접 통합한 무선충전 시스템으로는 처음이다. 카이엔은 에어서스펜션을 낮춰 차량 하부 수신부와 바닥 패드 사이 간격을 좁히며, 포르쉐는 효율을 약 90%로 제시했다. 무게 50kg인 이 바닥판은 가정용 콘센트에 꽂아 쓰고 전문 설치가 필요하며, 포르쉐는 충전의 75%가 집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겨냥해 이 시장을 노렸다고 밝혔다.
테슬라도 2024년 10월 사이버캡 공개 행사에서 25kW급 무선충전을 시연하며 효율 90% 이상을 주장한 바 있다. 지난 9월 3일 오스틴에서 운행을 시작한 사이버캡은 애초 충전구 자체가 없는 무선 전용 설계로 소개됐지만, 실제 양산차에는 숨겨진 NACS 충전구가 발견됐고 테슬라가 두 번째로 신고한 오스틴 로보택시 충전소도 무선 패드 없이 플러그형 충전 자리 24개로 구성됐다. 무선 패드 도입 시점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테슬라는 지난 2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로부터 고정형 지상 패드용 초광대역 무선 사용 승인을 받아 충전 코일 위에 차량을 센티미터 단위로 정렬하는 기술의 규제 장벽을 넘었다. 포르쉐도 같은 초광대역 정렬 기술을 쓰지만 개인용 제품이라는 이유로 별도 승인이 필요 없었다.
이 밖에 제네시스는 한국에서 GV60에 11kW 무선충전 옵션을 제공하고 있고, 위트리시티는 여러 1차 협력사에 공진 결합 방식 기술을 라이선스하고 있다.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는 통제된 환경에서 수백 킬로와트급 시스템까지 시연한 바 있다.
일렉트레온은 제품 다양성 면에서 경쟁사와 차별화된다는 입장이다. 라이트 도트 외에도 주행 중 충전하는 ‘라인’, 정차 구간에서 충전하는 ‘대시’, 대형 상용차용 고출력 충전 ‘울트라 도트’까지 갖췄다. 유럽과 아시아, 북미에서 20건 넘는 실제 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며, 세계 최초 무선충전 고속도로 구간과 24시간 무선충전 버스 차고지도 여기에 포함된다. 지난 3월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소재 고출력 정지형 무선충전 업체 인덕트EV 인수를 마무리했는데, 이를 통해 양사 특허를 합쳐 약 400건에 달하는 무선 에너지 전송 관련 특허를 보유하게 됐다. 인덕트EV의 시스템은 북미와 유럽 상용차 운영 업체에 공급되며 ‘바이 아메리카’ 규정을 충족해 미국 연방 지원금 수혜 자격도 유지하고 있다.
시장 환경도 무선충전 확산에 우호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모빌리티유럽 집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유럽 전기차 신규 등록 대수는 전년 동기 대비 약 33.7% 늘어난 124만 대를 넘어섰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 기준으로는 EU 지역 순수 전기차 점유율이 지난해 15.6%에서 올해 6월까지 20.7%로 올라섰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5년 보고서에서 현재 정책 기조가 유지될 경우 2030년까지 전기차가 신차 판매의 4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고, 이를 뒷받침하려면 2025년부터 2030년 사이 약 1억 5,000만 개의 충전 시설을 새로 설치해야 하는데 이 중 3분의 2가량이 가정용 충전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에서는 SAE J2954 표준이 무선충전 보급 속도를 가를 열쇠로 꼽힌다. 미국자동차공학회(SAE)가 제정한 이 표준은 소형 전기차용 무선 전력 전송의 작동 주파수와 3.7kW부터 22kW까지의 출력 등급, 최소 효율 기준, 이물질 감지 등 안전 요건을 규정한다. 이 표준이 널리 채택되면 규격을 충족하는 차량이라면 어떤 패드에서도 충전할 수 있는, 이른바 ‘무선판 표준 플러그’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무선충전이 장거리 이동용 고출력 급속충전을 대체하는 개념은 아니다. 그 가치는 집이나 차고지, 사업장에서 일상적으로 주차할 때 케이블을 다루거나 마모시킬 필요를 없애고, 운전자 없는 차량의 충전을 자동화하는 데 있다. 이 기술이 프리미엄 옵션이나 자율주행 차고지를 넘어 대중 시장으로 얼마나 빨리 확산할지는 J2954 표준으로의 수렴 속도, 모든 신차에 수신 코일을 넣는 데 드는 비용, 지상 인프라 구축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에 달려 있다. IAA 트랜스포테이션은 오는 20일까지 하노버에서 계속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