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첫 전기차 루체 공개…8억4000만 원, 1050마력, 530km

페라리(Ferrari)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순수 전기 스포츠카를 내놨다. 5월 25일 로마 ‘벨라 디 칼라트라바(Vela di Calatrava)’ 경기장에서 공개된 페라리 루체(Ferrari Luce)는 4개의 전기 모터로 최고출력 772kW(1050마력)를 내며, WLTP 기준 주행 거리 530킬로미터 이상을 확보한 5도어 5인승 그랜드 투어러다. 발표 장소는 1947년 페라리가 로마에서 처음으로 레이스 우승을 거둔 날과 같은 날짜에 맞춰 선택됐다.

루체(Luce)는 이탈리아어로 ‘빛’을 뜻한다. 차명처럼 페라리는 이 차를 단순히 ‘전기 페라리’가 아닌 전혀 새로운 카테고리의 페라리로 정의했다. 내연기관 라인업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기존 모델들과 함께 공존하는 확장 모델이다.

디자인: 애플 출신 디자이너의 첫 자동차

루체의 외관 디자인은 페라리 디자인 스튜디오가 아닌 외부에 맡겼다. 애플 수석 디자이너 출신 조니 아이브(Sir Jony Ive)와 마크 뉴슨(Marc Newson)이 이끄는 크리에이티브 컬렉티브 러브프롬(LoveFrom)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 차의 디자인 방향을 잡았다. 페라리가 핀인파리나(Pininfarina), 베르토네(Bertone) 같은 이탈리아 외부 디자인 하우스 대신 영미권 디자인 집단에 전권을 부여한 것은 브랜드 역사상 유례가 없다.

결과물은 이전 페라리와 확연히 다르다. 디자인의 중심은 하향 가압력이 아니라 공기 저항 최소화에 맞춰졌다. 유리 하우스(glasshouse) 형태의 탑승자 셀이 차체 하단 벨트라인까지 깔끔하게 뻗어 내려오고, 전후 에어로 윙이 그 위에 떠 있는 구조다. 마크 뉴슨은 “차 안에 또 다른 순수한 형태의 물체가 들어있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드래그 계수는 페라리 역대 최저로, 아말피(Amalfi) 대비 25% 낮다. 전면 23인치·후면 24인치의 비대칭 휠은 페라리 양산차 역사상 최대 사이즈다. 범퍼 코너와 도어 핸들, 와이퍼 마운팅까지 공력을 위해 조각됐다.

전장 5026밀리미터로 푸로상게(Purosangue)보다 53밀리미터 길고, 전고는 45밀리미터 낮은 1544밀리미터다. 휠베이스는 2961밀리미터, 전폭은 1999밀리미터(사이드미러 제외)다. 트렁크 용량은 597리터로 페라리 역대 최대다. 뒷좌석이 3개로 나뉘어 5명이 탑승하는 것도 이 차가 처음이다.

파워트레인: 바퀴마다 모터 하나씩

루체의 구동 방식은 ‘1바퀴=1모터’다. F80 하이퍼카에서 파생한 반경류 영구자석 동기 모터 4개가 각 바퀴를 독립적으로 제어한다. 전방 모터는 105kW·최고 3만rpm, 후방 모터는 각각 310kW·최고 2만5500rpm이다. 800V 아키텍처 기반 122kWh 배터리는 마라넬로(Maranello) 공장에서 직접 설계하고 조립한다. 배터리 셀은 SK온(SK On)과 공동 개발한 파우치 타입으로, 210개 셀이 직렬 연결돼 있다. 최대 충전 속도는 350kW로, 20분 만에 70kWh를 충전할 수 있다.

성능 수치는 0~100km/h 2.5초, 0~200km/h 6.8초, 최고속도 310km/h다. 공차 중량은 2260킬로그램으로, 무게중심 위치는 푸로상게보다 95밀리미터 낮고 요 관성 모멘트는 15% 작다. 페라리는 이로 인해 무게가 400킬로그램 가벼운 차처럼 방향 전환이 이뤄진다고 설명한다.

스티어링 휠에는 기존의 5단 마네티노(Manettino)와 새 3단 e-마네티노(e-Manettino)가 나란히 자리한다. e-마네티노는 레인지(Range)·투어(Tour)·퍼포먼스(Performance) 모드를 선택하며, 각각 최고출력이 320kW·460kW·725kW로 달라진다. 오른쪽 패들로 출력을 5단계로 올리고, 왼쪽 패들로 회생제동 강도를 조절하는 ‘토크 시프트 인게이지먼트(Torque Shift Engagement)’ 시스템이 내연기관 변속 페달 조작의 감각을 전기차로 옮겨온다.

사운드: 가짜 소리는 없다

페라리가 가장 공을 들인 부분 중 하나는 사운드다. 합성음 대신 후방 구동축 하우징에 정밀 가속도계를 장착해 회전 부품의 진동을 실시간으로 수집한다. 이 신호를 마치 일렉트릭 기타 앰프처럼 필터링하고 증폭해 실내외로 내보낸다. e-마네티노 퍼포먼스 모드에서만 음량이 높아지고, 레인지 모드에서는 완전히 무음으로 전환된다. 5년간 4만 킬로미터의 전용 서킷 테스트 끝에 완성한 시스템이다.

실내: 물리 버튼을 포기하지 않는다

마크 뉴슨은 “전기차라고 해서 전자 장치에 과도하게 의존할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실내는 물리 버튼, 다이얼, 토글, 스위치로 가득하다. 삼성 디스플레이(Samsung Display)가 전용 개발한 OLED 패널 4개(12.9인치·12인치·10.1인치·6.3인치)가 들어가지만, 모두 알루미늄 베젤과 정밀 가공 유리 렌즈 안에 담아 아날로그 계기판처럼 보이도록 설계했다. 세계 최초로 E-Ink 디스플레이를 적용한 코닝 고릴라 글라스(Corning Gorilla Glass) 재질의 물리 열쇠가 센터콘솔에 꽂히면 시동이 걸린다. 21개 스피커·24채널·3000W 오디오 시스템이 기본이다.

가격과 출시 일정

가격은 유럽에서 약 55만 유로(약 9억 6,518만원) 수준이 거론된다. 출고는 2027년 봄부터 시작된다. 페라리는 루체가 기존 포트폴리오를 대체하지 않으며, 퓨로산게·12칠린드리 같은 내연기관 모델과 함께 판매되는 추가 모델임을 명확히 했다. 배터리를 포함한 전동 부품에는 8년 보증이, 정기 유지보수에는 7년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60개 이상의 신규 특허가 포함된 이 차는 파워트레인부터 배터리팩까지 마라넬로에서 자체 제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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