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 대신 전기로 정글 달린다…남아공이 만든 ‘전기 사파리카’, 200km 주행

아프리카 사파리 하면 떠오르는 자동차가 있다. 차체를 높이고 지붕을 걷어낸 대형 오프로더다. 험한 길을 잘 달리고 시야도 좋지만, 야생동물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때 디젤 엔진의 소음과 진동, 배기가스는 피하기 어려웠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툴라 솔루션스(Thula Solutions)가 이 문제를 전기차로 풀었다. 기존 내연기관 SUV의 엔진만 전기모터로 바꾼 것이 아니라 아예 사파리 운행을 목적으로 처음부터 설계한 전기 사륜구동차 ‘ESV(Electric Safari Vehicle)’를 개발했다.

최근 크루거 국립공원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 차는 65kWh 배터리를 탑재하고 한 번 충전으로 약 200km를 달린다. 일반 승용 전기차와 비교하면 눈에 띄게 긴 주행거리는 아니지만 사파리 차량의 사용 환경을 감안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툴라는 통상적인 사파리 운행 기준으로 한 차례 충전하면 약 3일 동안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루에 장거리 고속도로를 달리는 대신 낮은 속도로 정해진 구역을 반복 운행하는 사파리 차량의 특성을 고려한 설정이다.

65kWh 배터리로 최대 20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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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자료에 따르면 ESV의 1회 충전 주행거리는 최대 200km이며 평균 전력 소비량은 약 30kWh/100km다.

전기차의 효율만 놓고 보면 승용 전기차보다 높은 전력 소비량이다. 하지만 ESV는 넓은 차체와 여러 명의 승객을 태우는 구조, 비포장도로 주행, 높은 지상고와 오프로드 타이어 등을 고려해야 한다.

사파리 차량은 효율보다 저속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이고 험로를 통과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배터리를 차체 아래쪽에 배치한 것도 이런 이유다. 무거운 배터리가 낮게 자리 잡으면서 무게중심을 낮추는 효과를 얻는다. 높은 차체와 여러 명의 승객 때문에 무게중심이 올라가기 쉬운 기존 사파리 차량과 비교하면 비포장도로와 경사로에서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

전기모터 특유의 즉각적인 토크도 오프로드에서 장점으로 작용한다. 엔진 회전수를 끌어올릴 필요 없이 출발 순간부터 힘을 낼 수 있어 바위나 모래, 진흙길처럼 저속에서 세밀한 구동력 조절이 필요한 상황에 적합하다.

사륜구동에 독립식 서스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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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V는 전기 사륜구동 시스템을 사용한다.

사파리 차량에서 사륜구동은 선택이 아니라 사실상 필수 장비에 가깝다. 포장도로를 벗어나 흙길과 진흙, 모래, 얕은 하천을 오가야 하기 때문이다.

툴라는 여기에 독립식 서스펜션을 적용했다. 일반적인 상용차 기반 사파리 차량에서는 내구성과 적재 능력을 고려해 비교적 단순한 서스펜션 구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ESV는 처음부터 승객을 태우는 용도로 개발했다.

각 바퀴가 노면 변화에 독립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에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에서 차체로 전달되는 충격을 줄일 수 있다.

이 점은 단순한 승차감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사파리 차량은 승객들이 높은 위치에 여러 줄로 앉는 경우가 많다. 특히 뒤쪽 좌석일수록 차체의 상하 움직임이나 좌우 흔들림을 크게 느낀다.

툴라는 초기 개발 과정부터 이 문제를 고려해 차체와 서스펜션을 설계했다.

‘조용하다’는 것도 중요한 성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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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전기차에서 정숙성은 편의사양에 가까운 장점이지만 사파리 차량에서는 차량의 핵심 성능이 된다.

야생동물을 관찰할 때 엔진 소리가 사라지면 가이드와 승객이 작은 목소리로 대화할 수 있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동물 소리도 쉽게 들을 수 있다.

사진 촬영에서도 차이가 난다. 디젤 엔진의 공회전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차체 진동이 없어 망원렌즈로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할 때 유리하다.

동물에 대한 영향도 줄일 수 있다. 완전히 무음인 것은 아니다. 타이어가 흙을 밟는 소리와 서스펜션, 구동계에서 발생하는 기계음은 남는다. 그러나 내연기관의 폭발음과 배기음이 사라진다는 것만으로도 기존 사파리 차량과는 운행 환경이 크게 달라진다.

툴라라는 이름 역시 은구니어로 ‘조용히 하다’ 또는 ‘가만히 있다’는 뜻에서 가져왔다.

회생제동도 사파리 주행에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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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V는 회생제동 시스템도 갖췄다.

운전자가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거나 감속할 때 전기모터를 발전기로 활용해 운동에너지 일부를 다시 배터리에 저장한다.

특히 사파리처럼 저속에서 가속과 감속을 반복하는 환경에서는 회생제동을 활용할 기회가 많다. 야생동물을 발견하면 속도를 낮추고 멈춘 뒤 다시 이동하는 패턴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기계식 브레이크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먼지와 진흙이 많은 비포장 환경에서 운행하는 차량은 브레이크와 각종 소모품 관리가 중요하다. 전기차는 엔진과 변속기를 포함한 구동계 부품 수가 적고 회생제동까지 사용할 수 있어 유지보수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충전은 롯지의 태양광과 연결

충전 환경 역시 일반 전기차와 다르다.

사파리 차량은 도시에서 급속충전기를 찾아다니는 차가 아니다. 대부분 하루 운행을 마친 뒤 정해진 숙박시설과 차고지로 돌아온다.

툴라는 이런 운행 방식에 맞춰 롯지에서 충전하는 방식을 고려했다. 특히 남아공의 고급 사파리 롯지 가운데 이미 태양광 발전 설비를 갖춘 곳이 많아 낮에 생산한 전기를 차량 충전에 활용할 수 있다.

공식 자료에서는 22kW 충전기를 사용할 경우 완전 충전에 약 4시간30분이 걸리는 것으로 안내하고 있다.

하루 운행을 마친 뒤 밤사이 충전하기에는 충분한 수준이다. 전력망이 부족한 외딴 지역에서도 태양광과 에너지저장장치를 함께 사용하면 자체적으로 차량을 운영할 수 있다는 점도 전기 사파리 차량이 갖는 특징이다.

단순 개조차 아닌 전용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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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라가 처음부터 이런 차를 만든 것은 아니다.

2017년 설립된 회사는 초기에는 기존 4륜구동 차량을 전기차로 개조하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러나 기존 내연기관 차량을 기반으로 하면 배터리 위치와 승객 공간, 서스펜션 설계에서 제약이 컸다.

결국 2023년부터 전기 사파리 차량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차체 개발에는 프리토리아대학교 차량동역학 연구그룹이 참여했다. 양산 준비 과정에서는 남아공 그케베라의 자동차 제작업체 하이테크 오토모티브가 합류했다.

배터리 시스템은 케이프타운에 있는 발란셀이 공급한다. 전기모터와 일부 전문 부품을 제외하면 차량 대부분을 남아공에서 개발하고 생산한다.

남아공 산업개발공사(IDC)도 사업 확대를 위한 자금을 지원했다. 툴라는 연구개발 차량을 넘어 전용 생산시설에서 월 50대 수준까지 생산 규모를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파리 차량에 전기차가 잘 맞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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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의 약점으로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은 주행거리와 충전 시간이다. 그러나 모든 자동차가 하루 수백㎞를 달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파리 차량은 운행 지역과 이동 거리가 정해져 있고 하루 일정을 마치면 같은 장소로 돌아온다. 주행 속도도 낮다. 반대로 정숙성과 저속 토크, 승차감, 유지비는 중요하다.

전기차의 특성과 상당 부분 맞아떨어진다.

ESV의 최대 200km 주행거리는 장거리 여행용 전기차로 보면 부족하지만 약 3일의 사파리 운행을 감당할 수 있다면 실제 사용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륜구동과 즉각적인 전기모터 토크, 낮은 무게중심, 독립식 서스펜션도 사파리 환경을 겨냥한 구성이다.

툴라 ESV가 주목받는 이유도 단순히 디젤 엔진을 없앴기 때문만은 아니다. 전기차의 장점을 실제 사용 환경에 맞춰 처음부터 다시 설계했다는 데 있다.

도심에서는 긴 주행거리와 빠른 충전이 전기차의 경쟁력을 좌우하지만, 아프리카 초원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이곳에서는 200km를 얼마나 빨리 달리느냐보다 얼마나 조용하고 안정적으로, 험한 길을 달릴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성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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